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재벌집 막내아들(드라마)/비판 (문단 편집) ==== 앞 뒤 안 맞는 캐릭터 묘사 및 엉터리 설정 문제 ==== 사건 전개 뿐만 아니라 캐릭터 묘사와 활용에서도 드라마판의 핵심적 문제인 설명 부족과 설득력 부족 문제는 빠지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우병준 실장의 등장은 드라마판 특유의 어처구니 없는 묘사 생략의 대표적 예시다. 원작에서 진도준은 손주의 안전을 염려한 진양철에게 우병준 실장을 소개받고 그에게 첩보, 호위의 전권을 주게 된다. 또한 진도준은 우병준 역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인간적인 교류를 했다. 우병준 당신이 내 적이 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가정 하에서 당신이 진도준 자신의 약점을 한 번 털어보라는 식으로 두 사람 만의 에피소드도 존재했다. 따라서 원작에서 우병준 실장이 진도준의 첩보원으로서 활약하고 충성한다는 전개는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드라마판에서는 그런 전개가 전혀 없이, 우병준이 진도준과 예전에 만났다는 묘사도 없는 가운데, 진도준과는 일면식도 없던 우병준이 뜬금없이 갑툭튀해서 진도준에게 살인 교사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를 건넨다. 갑툭튀하기 이전에 우병준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소개하는 장면도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우병준은 진양철의 직속 부하로서 진도준과 오세현을 도청하고 오세현을 진양철에게 데려간 인물이었다. 즉 진도준에게 호의를 보이고 증거를 내어줄 맥락이 아예 없다는 말이다. 그나마 캐릭터 소개가 소실되었다는 부분은, 우병준이 진도준을 도청하는 장면에서 진양철의 은밀한 일을 맡아 하는 인물이라는 복선을 깔아둔 것이라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봐줄 수는 있다. 그렇다한들 이를 유심히 봤던 시청자가 아니라면 그 때 그 직원이 우병준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우병준은 이필옥의 살인 교사 혐의를 알아낸 뒤 극 중에서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드라마판의 캐릭터 및 사건 묘사는 대개 이런 식으로 개연성이 초토화되어 있다. 비슷한 예시는 수도 없이 발견된다. 모현민이 '나는 당신 할머니 이필옥의 삶을 살겠다' 고 진성준에게 선언하는 장면은 아무 의미도 없이 버려졌고, 진성준이 장인어른과 음모를 꾸미는 장면 역시 이후의 극 전개에서 아무 역할이 없었다. 진도준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이항재가 이후 별 다른 등장이 전혀 없어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이상한 인간이 된 사례 등, 본 드라마는 마치 만화 [[블리치]] 마냥 쓸데없는 허세와 한 순간의 무의미한 간지를 추구한다. 시선끌기용으로 캐릭터가 별 이유도 없이 가오를 부리며 의미심장한 충격 선언이나 돌발행동을 하게 한 뒤, 그 선언 자체를 망각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치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맥거핀]] 적 활용이라 들먹이기도 한다. 그러나 철저하게 시청자의 반응을 계산하고 의도하여 배치한 맥거핀과, 벌려놓은 사건을 수습 못해서 방치된 본작의 무의미한 전개 간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거기에 캐릭터를 도구마냥 무의미하게 쓰고 버린다. 특히,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본인의 옷을 사는 대신 아들의 체육복을 입을 정도로 검소하게 살았던 윤현우의 어머니가 사실은 빚을 내면서까지 무리하게 주식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가, 순양과 정부의 빅딜 과정에서 투자한 돈을 모두 잃어 남편과 자식들을 놔두고 무책임하게 자살한다는 설정은 개연성이 가장 크게 떨어지는 포인트 중 하나다. 물론 당시 경제가 워낙 어려워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많았고, 굳이 좋게 보자면 캐릭터의 부정적 어둠도 보여주는 입체화라고 볼 수도 있긴 하다. 그러나 두 번째 장례식 장면 전까지 항상 온화하고 헌신적이었던 윤현우 어머니의 갑작스런 심리 변화를 시청자들이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입체적 인간상이란 설득력 있는 심리 묘사가 수반될 때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런 노력이 수반되지 않은 채로, 캐릭터가 갑자기 이전과 다른 극단적인 행동을 하면 일관성 없이 왔다갔다 한다는 비판만 들을 수밖에 없다. 본 드라마의 고질적 문제로서 일은 벌여놓고 제대로 된 설명과 수습은 안한 채 일회적 반전과 충격에만 집착하니 극이 망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장 가능성 높은 추측은 윤현우의 대학 입시와 관련해 어머니께 대학에 갈 거라 말하는 장면이 나온 것으로 보아 대학 등록금이 필요했을 것이란 점이다. 그 시점에선 아직 아버지 복직도 불투명한 상태였고, 어머니 입장에선 어떻게 해서든 윤현우의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되면 그것이 어째서 저번 생에선 없었고 이번 생에선 있었는지 설명할 필요성이 있다. 어느 쪽이든 개연성 부족의 지적을 피할 순 없다.] 물론 16부작이라는 한계 때문에 원작에 비해 사건과 인물을 묘사할 시간이 부족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드라마의 작가진은 원작에 있지도 않았던 윤현우의 가족사를 늘어놓으면서, 정작 그에 걸맞는 서사와 인물 구축은 게을리하는 치명적 문제점을 보인다. 할 것만 딱딱 해도 모자랄 시간에 파편적인 에피소드를 잡상인이 좌판 깔듯 너벌려놓고 나열하며 시간을 낭비하기 바쁘다. 그런데 그렇게 나열한 에피소드마저 깊게 다루지도 못하고 죄다 애매하고 시원찮은 퀄리티로 전개한다. 따라서 본 드라마가 원작에 있었던 내용만 재밌고 작가들이 직접 추가한 부분은 더럽게 재미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진도준의 가족들은 진도준의 동기 부여와 고뇌를 위해 일차원적으로 대상화될 뿐이다. 가족들 스스로의 인간적 욕구나 동기가 제대로 묘사되지 않고 있으며 그저 불쌍하기만 한 수동적 존재이자 도구로 그치고 있다. 윤현우의 아버지 역시 예외는 아닌데 윤현우의 아버지가 노골적인 수준으로 부정적 이미지로 묘사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 매우 크다. 윤현우의 아버지는 일관되게 사람은 좋으나 무능하고 대책 없는 가장으로 그려지는데, 실상 윤현우의 아버지는 메이저 자동차 회사의 [[생산직]]으로서 '''대단히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 윤현우 아버지의 직장의 모티브는 무려 [[기아자동차]]이다. 작중에서 해당 기업이 [[IMF]]로 부도를 겪긴 하지만 자동차 기술자라는 일은 동종 대기업으로 이직하든 2차, 3차 하청업체에 취업하든 뭘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다. 실직으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더라도 최소한 2002년 시점에는 무난히 가세가 회복되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윤현우의 아버지는 그렇게 살 이유가 전혀 없는 인물이다. 적어도 윤현우나 동생에게 기둥뿌리 뽑아가며 [[과외]]를 시켰다거나, [[예체능]]을 해서 그 분야에 엄청나게 쏟아붓느라 [[희생]]하거나, 가족 중에 막대한 치료비가 드는 [[불치병]] 환자가 있거나, [[보증]] 실패나 [[사기]]를 당했다거나 하는 정도는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 중 단 하나도 해당되는 게 없다.''' 윤현우 집안은 '[[그냥]]' 가난하다. 남편은 대기업 생산직으로 근속중이고[* 게다가 그 근속기간은 한국경제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서 고도성장하던 역사적 황금기였다. 누구나 빈손으로 [[단칸방]]에서 시작해도 [[적금]]들고 [[저축]]하면 내 집 장만은 할 수 있는 시대였다.] 부인은 [[자영업자]]로 아무리 봐도 세가 비싸지 않은 건물에서 소소하게 장사 중이며, [[단골]]도 그럭저럭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단순 실직상태가 몇 달 이어졌다고 바로 가스, 전기가 끊기고 참치캔을 훔쳐먹어야 하는 '절대적 빈곤' 상태에 빠진다. 드라마상 묘사만 보면 대기업을 수십년 근속한 가장이 있고 아내는 가정에 헌신적인데 모아둔 저금 한푼이 없어 단 몇 달의 생활비로 아껴 쓸 정도의 돈이 없는 이상한 집안인 것이다. 상술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작가들이 가난에 대한 이해가 매우 미흡하다.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고, 가난이란 걸 생전 겪어보지 못하고 곱게만 자랐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무능하고 통찰력이 부족한 [[아마추어]] 작가라면 이럴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300억대 제작비의 대작을 맡은 작가가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어내면 안 됐다. 그러나 드라마는 윤현우의 가족 관련해서 유독 일차원적이고 [[수박 겉 핥기]]적인 가난 묘사, 흔해빠진 가난 [[클리셰]]에 [[빈곤 포르노]] 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한 드라마는 [[빈부격차]] 관련해서도 유치하고 입체성이 결여된 단면적 선악구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 마디로 '가난하고 불쌍해야 하니까' 아무 이유도 맥락도 없이 그저 가난하고 불쌍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드라마가 애를 써서 인위적으로까지 표현하려 하는 사회적 불공정 문제도 이해도가 극히 얕고 '[[기득권]]이 다 잘못했다'는 식의 유치한 [[언더도그마]] 수준에 그치고 있다. 수년 전에 나온 드라마인 [[미생(드라마)|미생]]이나 [[송곳(드라마)|송곳]]과 비교할 때 인간 통찰과 문제의식의 수준이 심각하게 차이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